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Azores)를 처음 보면 이상한 고민이 생깁니다.
섬이 아홉 개나 있는데 대체 어디부터 가야 하는가입니다.
그 질문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조레스에서 가장 큰 상미겔섬(São Miguel Island)입니다.
상미겔섬 지도를 펼쳐놓고 자동차로 섬을 서쪽·중앙·동쪽 세 구역으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서쪽에는 세테 시다데스(Sete Cidades)의 거대한 화산 칼데라가 있고, 중앙에는 포구호(Lagoa do Fogo), 동쪽에는 땅에서 뜨거운 증기가 올라오는 푸르나스(Furnas)가 있습니다.
이 세 곳을 연결하면 숙소를 어디에 잡을지, 몇 박이 필요한지, 온천은 언제 들어갈지, 심지어 어느 날 고기를 먹을지까지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1. 첫날 공항에서 서쪽으로 갈까, 동쪽으로 갈까|상미겔섬은 이 선택 하나로 여행 동선이 절반 결정된다
한국에서 상미겔섬(São Miguel Island)까지 직항으로 한 번에 가는 여행은 일반적인 선택지가 아닙니다.
상미겔섬의 관문인 폰타델가다(Ponta Delgada)로 들어가기 위해 한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뒤 포르투갈 본토 등을 연결하는 여정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아조레스 공식 관광청은 아조레스가 리스본(Lisbon)과 포르투(Porto)에서 항공으로 약 2시간 거리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출발 여행이라면 상미겔섬만 3박 하고 돌아오는 것보다 리스본 2
3박 + 상미겔 4
5박처럼 포르투갈 본토와 묶는 편이 장거리 이동의 부담을 줄이기 좋습니다.
섬에 도착하면 저는 호텔부터 찾아가지 않고 렌터카를 인수해 여행 지도를 세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서쪽은 세테 시다데스(Sete Cidades), 중앙은 포구호(Lagoa do Fogo)와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 동쪽은 푸르나스(Furnas)와 노르데스테(Nordeste)입니다.
첫 숙소는 폰타델가다(Ponta Delgada)에 2박 정도 두는 것이 무난합니다.
공항 접근성이 좋고 식당과 숙박 선택지가 많아 장거리 비행 직후 섬 생활에 적응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2박을 푸르나스(Furnas) 쪽에 두면 여행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폰타델가다가 ‘도시에서 섬을 탐험하러 나가는 숙소’라면 푸르나스는 잠들 때까지 화산섬 안에 머무르는 숙소에 가깝습니다.
상미겔섬의 기후는 한 가지 숫자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온화하지만 구름·비·바람이 빠르게 달라질 수 있고, 섬의 다른 쪽에서는 날씨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10월 3일 공식 예보에서도 상미겔섬은 비와 높은 습도가 나타났고 이후 며칠은 부분적으로 흐린 날씨가 예보돼 있습니다. 즉 ‘포르투갈이니까 계속 햇빛이 강하겠지’라는 생각으로만 준비하기에는 변화가 큽니다.
그래서 이 섬에서는 호텔 창밖이 흐리다고 하루 일정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서쪽 세테 시다데스가 구름에 잠겼다면 중앙이나 동쪽을 확인하고 차를 돌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렌터카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여행의 핵심 도구가 됩니다.
상미겔섬에서는 좋은 호텔을 찾는 것보다 좋은 날씨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2. 둘째 날은 파란 호수, 셋째 날은 땅에서 나오는 증기|상미겔에서는 ‘화산’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둘째 날 아침 날씨가 좋다면 서쪽으로 갑니다.
목적지는 세테 시다데스(Sete Cidades)입니다.
이곳의 핵심은 전망대에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화산 칼데라 안에 호수와 마을이 들어앉아 있다는 지형을 위에서 보고 실제 호숫가까지 내려가 보는 것입니다.
비스타 두 헤이 전망대(Miradouro da Vista do Rei)에서는 녹색과 푸른색으로 보이는 두 호수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이 일대는 포르투갈의 자연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소개됩니다.
걷고 싶다면 PR3 SMI 비스타 두 헤이-세테 시다데스(PR3 SMI Vista do Rei–Sete Cidades) 트레일이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현재 공식 트레일 정보는 약 7.5㎞, 평균 2시간, 쉬운 난이도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은 같은 화산섬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푸르나스(Furnas)로 갑니다.
이곳에서는 호수 주변에서 증기가 올라오고 유황 냄새가 느껴지면서 ‘예쁜 섬’이라는 인상이 갑자기 ‘아직 땅속이 살아 있는 섬’으로 바뀝니다.
공식 관광청도 푸르나스 계곡(Furnas Valley)의 끓어오르는 온천과 증기를 화산활동의 흔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지질환경이 관광지만 만든 것이 아니라 음식까지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코지두 다스 푸르나스(Cozido das Furnas)는 고기와 채소 등을 큰 냄비에 넣어 화산 지열이 올라오는 땅속에서 약 6시간 천천히 익히는 음식입니다.
그러니 푸르나스에서는 점심 메뉴 하나도 여행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현재 푸르나스에서 실제 영업이 확인되는 식당으로는 푸르나스 레이크 레스토랑(Furnas Lake Restaurant) 등이 있습니다.
폰타델가다 쪽으로 돌아왔다면 현지음식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가스트로노모(Gastrónomo)도 현재 영업이 확인됩니다.
섬 남쪽 해안 드라이브를 하는 날에는 해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바르 칼로우라(Bar Caloura)를 동선에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코지두 다스 푸르나스 외에도 아조레스산 쇠고기, 신선한 생선과 문어, 치즈, 파인애플 등을 함께 경험해볼 만합니다.
그리고 푸르나스에서는 온천을 일정 마지막에 넣는 편이 좋습니다.
하루 종일 화산지형을 걷고 난 뒤 온천에 들어가면 ‘관광지 하나를 더 본다’기보다 그날 본 화산지형을 몸으로 마무리하는 경험이 됩니다.
이게 상미겔 여행에서 제가 하루를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관광지 세 곳 + 식당 한 곳을 묶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나의 지형을 이해하는 일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3. 마지막 날까지 지도를 꽉 채우지 않는다|5박을 쓰는 사람과 3박을 쓰는 사람의 차이는 ‘포구호 한 곳’이 아니다
상미겔섬을 3박으로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첫날 폰타델가다(Ponta Delgada), 둘째 날 세테 시다데스(Sete Cidades), 셋째 날 푸르나스(Furnas)를 보고 떠나는 식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면 저는 5박을 선택하겠습니다.
이유는 관광지를 두 개 더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을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포구호(Lagoa do Fogo)를 보러 갔는데 구름이 호수를 완전히 덮었다면 3박 여행에서는 그대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5박이라면 다음 날 다시 지나갈 수 있습니다.
포구호는 1974년부터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공식 관광청은 현재 방문용 셔틀 서비스도 안내하고 있으므로 방문 시점의 차량통제와 셔틀 운영조건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일정 중 하루는 ‘유명 관광지가 없는 날’로 만들어도 됩니다.
북쪽 해안으로 운전해 차밭과 작은 마을을 지나거나,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 쪽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천을 한 번 더 즐기는 식입니다.
고래 관찰 투어를 넣는 것도 아조레스다운 선택이지만 야생동물 관찰이므로 고래를 반드시 볼 수 있다고 전제해서 일정을 만들면 안 됩니다.
비용은 한국에서 포르투갈 본토를 거쳐 상미겔섬 5박을 포함하는 여행을 기준으로 1인 약 240만
430만원 정도의 계획예산을 잡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 포르투갈 및 상미겔 연결 항공 120만 ~ 200만원, 상미겔 숙박 5박 45만 ~ 90만원, 렌터카·연료 25만 ~ 45만원, 식비 30만 ~ 50만원, 온천·트레킹·투어·기타 20만 ~ 45만원으로 계산하면 120 ~ 200 + 45 ~ 90 + 25 ~ 45 + 30 ~ 50 + 20 ~ 45 = 약240~430만원입니다.
리스본 체류를 추가하면 숙박과 식비가 더 들어가므로 전체 포르투갈 여행비는 이보다 높아집니다.
반대로 두 사람이 객실과 렌터카를 함께 사용하면 1인당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상미겔섬에서는 숙박비를 조금 아끼더라도 렌터카 예산은 쉽게 빼지 않겠습니다.
버스와 투어로도 주요 장소를 볼 수 있지만, 이 섬의 진짜 장점은 세테 시다데스에 구름이 끼었을 때 ‘그럼 푸르나스로 가자’라고 즉석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폰타델가다로 돌아올 때 여행 지도를 다시 보면 처음과 전혀 다르게 보일 겁니다.
서쪽의 거대한 칼데라 호수, 중앙의 포구호, 동쪽의 온천과 지열지대가 각각 떨어진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화산섬이 만든 서로 다른 얼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상미겔섬에서는 그래서 ‘어디를 몇 곳 봤는가’보다 차를 타고 섬을 가로지르면서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이 여행은 관광지를 찍고 이동하는 로드트립이 아닙니다.
하루마다 다른 화산의 얼굴을 찾아가는 로드트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