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섬 여행을 생각하면 산토리니(Santorini)나 미코노스(Mykonos)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유적도 보고 싶고, 에게해에서 수영도 하고 싶고, 오래된 골목에서 저녁도 먹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곳이 로도스섬(Rhodes)이다.
로도스는 그리스 도데카니사 제도(Dodecanese)에서 가장 큰 섬으로, 튀르키예 해안과 상당히 가까운 에게해 남동부에 자리한다.
섬의 길이가 약 77㎞에 달해 작은 휴양섬을 상상하고 가면 생각보다 이동거리가 길다.
무엇보다 로도스 중세도시(Medieval City of Rhodes), 린도스(Lindos), 해변과 산악마을이 한 섬에 함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로도스 타운에서만 머물 것인가, 린도스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인가.
이 선택부터 여행이 갈라진다.

1.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지도를 먼저 봤다|로도스 타운과 린도스 사이 50㎞가 여행을 바꾼다
로도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먼저 알아둘 것은 로도스 타운(Rhodes Town)과 린도스(Lindos)가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섬 북쪽에는 로도스 타운이 있고 남동쪽으로 약 50㎞ 내려가야 린도스가 나온다.
버스로는 약 1시간 40분이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숙소를 아무 생각 없이 한곳에 잡아놓고 매일 왕복하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게 된다.
내가 처음 로도스를 간다면 5박을 로도스 타운 3박+린도스 2박으로 나누겠다.
첫 숙소는 로도스 올드타운(Rhodes Old Town)이나 신시가지 주변이다.
한국에서 로도스로 가는 직항편을 기본 전제로 잡기보다는 인천 → 유럽 또는 아테네 → 로도스처럼 연결편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테네 국제공항(Athens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로도스 디아고라스 국제공항(Rhodes Diagoras International Airport)까지는 비행시간이 약 1시간이며, 공항은 로도스 타운에서 약 15㎞ 떨어져 있다.
이동시간까지 생각하면 한국에서 출발한 날부터 로도스 관광을 시작하겠다는 일정은 빡빡하다.
첫날은 로도스 타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골목 산책 정도로 끝내는 편이 낫다.
그런데 바로 이 ‘저녁 산책’이 로도스에서는 상당히 특별하다.
로도스 중세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으로 지정된 성곽도시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기사단 거리(Street of the Knights), 그랜드 마스터 궁전(Palace of the Grand Master), 오래된 광장과 골목이 이어진다.
성 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이탈리아 통치기의 흔적이 한 도시 안에 겹쳐 있다.
여기서는 낮에 유명 건축물만 찾아다니는 것보다 아침과 밤의 올드타운을 각각 걸어보는 것이 좋다.
낮에는 관광객이 많지만 저녁이 되면 조명이 켜진 성벽과 돌길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로도스 타운에서 숙박해야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반대로 여행 후반부에는 린도스로 숙소를 옮긴다.
언덕 위에는 린도스 아크로폴리스(Acropolis of Lindos)가 있고 그 아래로 흰색 집들이 촘촘하게 내려앉아 있다.
정상에는 아테나 린디아 신전(Temple of Athena Lindia)을 비롯해 고대·비잔틴·기사단 시대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린도스를 당일치기로만 방문하면 가장 더운 시간에 도착해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다시 돌아가기 바쁘다.
반면 이곳에서 자면 아침 일찍 골목을 걸은 뒤 해변으로 내려가고, 오후 관광객이 빠진 후 다시 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
결국 로도스 숙소를 고를 때 ‘어느 호텔이 좋은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나는 성곽도시의 밤과 흰 마을의 아침 중 어느 것을 포기할 것인가?’다.
5박 이상이라면 굳이 하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2. 오전에는 2,000년 전 유적, 오후에는 수영복|로도스에서는 하루에 시대가 몇 번씩 바뀐다
로도스의 재미는 ‘유적이 많은 섬’이라는 데만 있지 않다.
더 재미있는 것은 유적과 휴양을 서로 다른 날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침에는 돌길을 걸으며 중세 성벽을 보고 있었는데 몇 시간 뒤에는 수영복 차림으로 에게해에 들어갈 수 있다.
린도스가 대표적이다.
아침에는 린도스 아크로폴리스까지 올라가고 내려와서는 린도스 비치(Lindos Beach)나 세인트 폴스 베이(St Paul’s Bay)에서 오후를 보내는 식이다.
여기서 여행시기도 중요해진다.
로도스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로도스 지방정부가 안내하는 월별 기온에서도 7월 최고기온은 약 32℃, 8월은 약 34℃까지 올라간다.
반대로 5월은 약 24℃, 10월도 약 27℃ 수준이다.
그래서 해수욕이 최우선이라면 한여름이 매력적이지만 유적과 마을 걷기까지 함께하려면 5 ~ 6월이나 9 ~ 10 월이 상당히 실용적인 선택이다.
특히 린도스 아크로폴리스는 그늘이 많은 관광지가 아니다.
한여름 한낮에 올라갔다가 오후에 또 관광지를 도는 일정을 잡으면 여행이 금방 지칠 수 있다.
렌터카를 빌린 날에는 유명한 곳만 쫓지 않고 섬 자체를 종단해보는 것도 좋다.
동부 해안을 따라가면 앤서니 퀸 베이(Anthony Quinn Bay), 팔리라키(Faliraki), 잠비카 비치(Tsambika Beach) 같은 해변을 묶을 수 있다.
반대로 내륙으로 방향을 틀면 해변 휴양지만 보고서는 알기 어려운 로도스의 산과 작은 마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욕심을 조금 버리는 게 중요하다.
로도스는 ‘하루에 명소 여섯 곳’을 찍는 방식보다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해변 한 곳, 저녁에 마을 하나 정도로 리듬을 잡는 편이 잘 맞는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아예 목적을 음식으로 바꿔도 된다.
로도스에서 찾아볼 만한 현지 음식으로는 병아리콩을 이용해 만드는 피타루디아(Pitaroudia), 고기와 양파 등을 천천히 조리하는 레키티 메 레비티아(Lekithi me Revithia) 같은 로도스식 음식이 있고, 그리스 여행에서 익숙한 무사카(Moussaka), 수블라키(Souvlaki), 문어구이, 돌마데스(Dolmades), 그릭 샐러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현지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레스토랑도 늘어나고 있다.
로도스 타운에서는 현지식을 찾아보기 좋은 포 로디스(4 Rodies), 올드타운 안에서 접근하기 편한 마마 소피아(Mama Sofia) 등을 일정에 넣어볼 수 있다.
린도스에서는 마을 중심의 미토스 올 데이 레스토랑(Mythos All Day Restaurant)이나 바닷가에서 식사할 수 있는 파노스(Panos) 같은 선택지가 있다.
나는 로도스에서는 ‘유명 맛집 세 곳 정복’ 같은 일정을 짜기보다 한 끼 정도는 내륙의 작은 타베르나(Taverna)에서 길게 먹는 시간을 남겨놓는 편이 이 섬과 더 잘 맞는다고 본다.
아침에는 기사단의 성벽을 보고, 점심에는 병아리콩 요리를 먹고, 오후에는 바다에 들어갔다가 저녁에는 하얀 마을의 옥상에서 식사한다.
로도스에서는 이동거리가 아니라 시대 사이의 거리가 짧다.
3. 마지막 이틀을 비워두면 로도스가 달라진다|5박 7일 일정과 실제 여행경비 계산
로도스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일정은 모든 날짜를 출발 전부터 관광지로 꽉 채우는 것이다.
차라리 첫 3일만 확실하게 정하고 나머지 이틀에는 선택지를 남겨두는 방식이 좋다.
예를 들어 5박이라면 첫날 로도스 타운 도착과 올드타운 야경,
둘째 날 중세도시와 그랜드 마스터 궁전,
셋째 날 렌터카로 해변과 내륙을 돌아본 뒤 린도스로 이동한다.
넷째 날 아침에는 린도스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오후에는 바다에서 쉰다.
그리고 마지막 하루를 비워둔다.
바다가 좋았다면 해변을 하나 더 찾아도 되고, 운전을 더 해보고 싶다면 남부까지 내려가도 된다.
유적이 더 좋았다면 다시 로도스 타운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로도스가 생각보다 큰 섬이기 때문이다.
길이 약 77㎞, 면적 약 1,401㎢라 ‘작은 그리스 섬 하나’라는 느낌으로 일정을 짜면 매일 장거리 이동을 하게 된다.
렌터카도 그래서 여행 내내 빌릴 필요는 없다.
로도스 타운의 올드타운을 구경하는 날에는 오히려 차가 번거롭다.
시내 숙박 23일은 도보와 대중교통을 활용하고, 린도스와 해변을 이동하는 날에 맞춰 23일만 렌터카를 이용하는 식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럼 한국에서 가는 여행비는 얼마나 잡아야 할까.
2026년 기준으로 특정 날짜의 항공료를 고정가격처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5박 7일 1인 자유여행을 위한 계획용 예산으로 계산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로도스 연결항공권을 약 100만 ~ 180만원, 중급 숙소 5박을 2인 1실 기준 1인 40만 ~ 80만원, 렌터카와 현지 교통 15만 ~ 30만원, 식비 30만 ~ 50만원, 유적 입장·해변·기타 체험 10만 ~ 25만원, 기타 비용 10만 ~ 20만원 정도로 우선 잡아볼 수 있다.
합치면 대략 205만 ~ 385만원이다.
물론 여름 성수기의 좋은 숙소를 선택하면 이 범위를 넘어갈 수 있다.
반대로 항공권을 일찍 확보하고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시기를 고르면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여기서 로도스 여행비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볼거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숙소 위치와 이동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기간이 3박뿐이라면 욕심내서 섬 전체를 돌기보다 로도스 타운을 거점으로 잡고 린도스를 하루 다녀오는 편이 낫다.
5박이면 로도스 타운과 린도스에 나눠 숙박해볼 만하고, 7박 정도라면 그때부터 해변과 작은 마을을 천천히 섞을 여유가 생긴다.
이 섬을 산토리니의 대체 여행지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로도스의 매력은 파란 지붕이나 절벽 호텔처럼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침에는 2,000년이 넘은 유적을 걷고, 오후에는 에게해에서 수영하고, 저녁에는 중세 성벽 안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로도스는 사진 한 장을 얻으러 가는 섬보다 여행의 하루를 여러 장면으로 채우고 싶은 사람에게 훨씬 재미있는 섬이다.